사전연명의료의향서, 금고에 넣어두면 소용없다
사전의료지시서(생전유언, 의료대리인 지정서 등)를 안전하게 보관하고 싶은 마음에 은행 금고 같은 곳에 넣어두는 사람이 많다. 하지만 하버드 의대 공개 건강정보(Harvard Health Publishing)는 정작 응급 상황으로 갑자기 입원했을 때는 그런 문서가 아무 도움이 되지 않는다고 지적한다. 문서를 가장 안전하게 지키는 방법이 오히려 정작 필요한 순간에 그 문서를 무용지물로 만들 수 있다는 역설이다. 관건은 안전하게 보관하면서도 필요할 때 누구든 바로 꺼낼 수 있게 관리하는 것이다.
가장 먼저 사본을 가지고 있어야 할 사람은 의료대리인과 예비 대리인이다. 이들은 사전의료지시서뿐 아니라 의료대리인 지정서(생전유언이 있다면 그것까지) 모두를 갖고 있어야 한다. 응급 상황에서는 대리인이 병원이나 의사에게 문서를 팩스로 보내야 할 수도 있으므로 미리 손에 쥐고 있어야 한다. 주치의에게도 사본을 맡겨 진료기록과 파일에 포함해 두는 것이 좋고, 입원 중이라면 본인이든 대리인이나 가족이든 병원 차트에 사전의료지시서 사본을 넣어달라고 요청해야 한다.
원본은 집 안의 안전한 곳에 보관하되, 그 위치를 대리인과 가족, 친구에게 반드시 알려야 한다. 병원이 원본을 요구하는 경우도 있어 필요할 때 누군가 바로 찾을 수 있어야 하기 때문이다. 미국 호스피스완화의료기구(National Hospice and Palliative Care Organization)는 모든 사본에 원본이 어디에 보관돼 있는지 함께 적어두라고 권한다. 결국 하나의 원칙으로 요약된다 — 문서는 잠가두되, 그 존재와 위치를 아는 사람은 여럿이어야 한다는 것이다.
지갑이나 가방에는 의료대리인의 이름과 연락처가 적힌 카드를 넣고 다니면 좋다. 이 카드에 원본과 추가 사본을 어디에 보관하고 있는지도 함께 메모해두면 응급 상황에서 큰 도움이 된다. 심폐소생술 거부 의향서(DNR)가 있다면 서명된 문서를 직접 제시해야 하거나 이를 표시하는 특수 팔찌를 착용해야 할 수도 있다는 점을 기억해야 한다. 변호사가 문서 작성을 도왔다면 사본을 보관해주는지, 얼마나 오래 보관하는지도 미리 확인해두는 것이 좋다. 결국 사전의료지시서는 한 번 작성해두고 잊어버리는 서류가 아니라, 주기적으로 위치와 사본 상태를 점검해야 하는 살아있는 문서에 가깝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