십자말풀이가 어려워졌다면? 의미기억을 훈련하는 법
레드 와인과 로제 와인의 맛을 구분할 수 있는가. 1960년대 머슬카와 수입차의 생김새 차이는? 백합과 튤립 중 무엇을 더 좋아하는지, 핑크 플로이드의 '다크 사이드 오브 더 문'과 '플라이 미 투 더 문' 중 어느 쪽을 듣고 싶은지 답할 수 있다면, 그건 모두 '의미기억' 덕분이다. 십자말풀이나 낱말 퀴즈가 예전만큼 술술 풀리지 않는다면, 이 의미기억이라는 개념을 알아둘 만하다. 하버드 의대 공개 건강정보(Harvard Health Publishing)에 기고한 신경과 전문의 앤드루 버드슨 박사에 따르면 의미기억은 단어의 뜻이나 세상에 대한 사실적 지식을 저장하는 기억 체계다. "포크는 음식을 먹는 도구다(머리를 돌돌 마는 도구가 아니라)"거나 사자의 털 색깔이 무엇인지 아는 것처럼, 신발끈 끝의 플라스틱 조각을 '애글릿'이라 부른다는 것을 몰라도 그 쓰임을 아는 것 역시 모두 의미기억에 속한다.
새로운 의미기억은 처음엔 '일화기억'을 거쳐 만들어진다. 어떤 사실을 어디서, 어떤 상황에서 알게 됐는지에 대한 기억은 몇 주에서 몇 년까지 남아 있다가 서서히 흐려지고, 결국 그 상황에 대한 맥락은 사라진 채 사실 자체만 의미기억으로 남는다.
의미기억이 저장되는 핵심 부위는 좌측 측두엽이다(왼쪽 관자놀이 바로 뒤, 눈 뒤쪽 지점을 손가락으로 짚으면 그 위치다). 1996년 학술지 네이처에 실린 대표적인 연구는 좌측 측두엽에 병변이 있는 뇌졸중 및 기타 뇌손상 환자 100명 이상을 대상으로 유명인, 동물, 도구의 이름을 대게 하고 뇌영상까지 촬영해, 측두엽 앞쪽(눈에 가까운 쪽)이 손상되면 사람 이름을 대는 데 가장 어려움을 겪고 뒤쪽(뒤통수 쪽)이 손상되면 도구 이름을, 그 중간 부위가 손상되면 동물 이름을 떠올리는 데 어려움을 겪는다는 사실을 밝혀냈다. 건강한 성인을 대상으로 한 양전자방출단층촬영(PET) 연구에서도 이와 비슷한 활성화 패턴이 확인됐다. 최근 연구들은 좌측 측두엽 앞쪽의 퇴행이 일부 치매에서 나타나는 단어 이해 장애와 관련이 있다는 점도 보여준다. 알츠하이머병에서도 흔히 나타나지만, '의미치매'라 불리는 실어증 유형에서 가장 두드러져 대화 초반에는 정상처럼 들리다가도, 대화를 이어갈수록 온갖 사물을 그저 '거시기' 같은 말로 뭉뚱그려 부르고 있다는 걸 알아차리게 된다. 버드슨 박사가 실제로 만난 한 환자는 '약'이나 '신발' 같은 흔한 단어의 뜻조차 더는 알지 못했다고 한다.
의미기억이 좌측 측두엽에만 저장되는 것은 아니다. 우측 측두엽은 골프공과 탁구공의 무게 차이 같은 비언어적 정보나 얼굴 인식을 담당하고, 측두엽 위쪽 청각연합피질에는 프랭크 시나트라가 부르는 '플라이 미 투 더 문'이 어떤 소리로 들리는지가, 후두엽 시각연합피질에는 쉐보레 카마로의 이미지가, 두정엽 감각연합피질에는 뺨에 닿는 튤립 꽃잎의 촉감이 각각 저장된다. 이렇게 여러 영역에 나뉘어 저장된 정보들은 단어와 개념 사이, 그리고 서로 다른 단어들 사이의 관계망을 이루는데, 예를 들어 핑크 플로이드의 앨범 '더 다크 사이드 오브 더 문'에 대한 의미기억은 달 착륙으로, 다시 우주비행사로, 우주비행사 출신 상원의원 존 글렌으로, 상원의원들로, 정치인들로, 대통령들로 이어지는 연상 고리를 만들 수 있다. 이런 뇌 전역에 걸친 연결망이 바로 십자말풀이를 풀 때 실마리를 던져주는 바탕이 된다.
다행히 의미기억은 정상적인 노화 과정에서 크게 줄어들지 않는다는 것이 버드슨 박사의 설명이다. 오히려 평생에 걸쳐 배움을 이어가면 나이가 들어서도 어휘력과 십자말풀이 실력이 늘어날 수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