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빈 둥지 ①] 아이들이 떠난 자리, 부부만 남았을 때 벌어지는 일

아이들이 떠난 자리, 부부만 남았을 때 벌어지는 일

세 아이를 키우며 리사와 로저 부부는 아이들이 독립하면 신혼 때처럼 둘만의 시간을 즐기자고 늘 이야기했다. 하지만 막내까지 집을 떠나자, 두 사람 사이엔 그런 낭만 대신 낯선 침묵만 남았다. 미국 가트맨연구소(The Gottman Institute)가 소개한 이 부부의 사례는 '빈 둥지 증후군'이 부부관계에 어떻게 균열을 내는지, 또 어떻게 회복할 수 있는지를 잘 보여준다.

아이들을 대학까지 보내느라 부부는 각자 일에 매달렸다. 분만실 간호사인 리사는 추가 근무를 마다하지 않았고 화장품 방문판매까지 겸했다. 종합건설업자인 로저도 닥치는 대로 리모델링 일을 맡았다. 아이들을 이런저런 활동에 데려다주느라 부부는 서로 다른 방향으로 흩어졌고, 함께 있는 시간엔 대개 자녀 이야기만 오갔다. 부부관계도 뜸해졌고 리사에게는 그마저 만족스럽지 않았다. 막내를 기숙사에 들여보낼 무렵엔 첫째 딸은 남자친구를 따라 타지로 떠났고, 둘째도 대학 3학년이 돼 있었다.

아이들이 모두 떠난 뒤에도 두 사람은 여전히 바빴지만, 서로를 향한 시간은 아니었다. 로저는 정체를 피하려 매일 일찍 집을 나섰고, 리사는 12시간 근무를 위해 그보다도 일찍 나서거나 쉬는 날엔 늦잠을 잤다. 이상하다는 걸 먼저 알아챈 쪽은 리사였다. 함께 있는 저녁이면 로저는 소파에 널브러져 TV를 보고, 자신은 아이와 통화하다 매번 눈물을 훔치거나 노트북으로 주문을 처리하며 SNS를 들여다보고 있다는 걸 깨달은 것이다. 결혼 23년 전 느꼈던 정서적 유대감이 그리웠던 리사는 어느 날 저녁, TV를 보며 밥을 먹는 로저에게 광고가 나오는 틈을 타 "우리 이제 같이 하는 게 없잖아"라고 말을 꺼냈다. 로저는 "관심 없는 줄 알았지. 당신은 여기 나랑 같이 있는 대신 전화하거나 노트북만 들여다보잖아"라며 오히려 서운함을 드러냈다. 리사는 뉴스와 리얼리티 방송을 함께 보는 걸 '같이 시간을 보낸다'고 여기지 않았지만, 로저는 퇴근 후엔 쉬고 싶을 뿐이라고 맞섰다. 광고가 끝나자 로저의 시선은 다시 TV로 돌아갔다.

이후에도 리사의 시도는 번번이 무산됐다. 결국 직장 동료의 권유로 부부상담을 다시 받기로 했다. 상담은 처음이 아니었다 — 신혼 초 갈등을 풀어가는 데 어려움을 겪던 두 사람은 그때도 상담의 도움을 받은 적이 있었다. 하지만 이번엔 로저를 설득하기가 쉽지 않았고, 리사가 따로 살겠다고 말하고 나서야 마지못해 동의했다. 동료는 빈 둥지 증후군이 중년 부부에게 흔히 나타나는 현상이며, 상실감과 슬픔을 동반해 우울증과 정체성 혼란, 부부 불화로 이어질 수 있다고 리사에게 설명했었다.

부부가 상담에서 배운 핵심은 두 가지였다.

첫째는 '러브맵(Love Map)' 다시 그리기다. 가트맨 박사는 러브맵을 '배우자의 역사, 관심사, 두려움, 희망, 목표를 저장해두는 마음속 지도'라고 설명한다. 성공적인 결혼생활의 과제 중 하나는 질문하고 귀 기울이며, 좋을 때나 힘들 때나 배우자에게 '다가서는' 태도로 그 지도에 계속 세부 정보를 채워 넣는 것이다. 자녀 양육기를 지나며 서로의 내면은 계속 변해왔는데, 특히 아이들이 집을 떠나는 시기처럼 인생의 국면이 바뀔 때마다 그 변화를 놓치지 않고 지도를 업데이트해야 관계가 유지된다는 것이다. 행복한 부부일수록 이 러브맵을 활용해 서로를 이해하고, 애정과 존중을 표현한다.

둘째는 '공유된 의미' 되찾기다. 가트맨 박사의 연구에 따르면 만족스러운 결혼생활을 하는 부부는 각자의 이야기가 서로 겹쳐지는 '공유된 의미'를 만들어낸다. 아이를 키우는 동안 부부는 자녀를 중심으로 각자의 방향으로 흩어져 있었고, 그 상태로 공유된 의미 없이 지냈다면 두 사람은 밤에 스쳐 지나가는 배처럼 계속 다른 방향으로 나아갔을 것이다. 리사와 로저는 연애 시절 사진을 함께 꺼내보고, 좋아했던 노래를 듣고, 로맨스 영화를 다시 챙겨봤다. 그 과정에서 리사가 가족의 뿌리를 찾아 독일과 스웨덴 여행을 꿈꾸고 있다는 것을, 로저가 어느새 태국 음식을 좋아하게 됐다는 것을 서로 새롭게 알게 됐다.

두 사람은 매주 데이트하는 요일을 정하고 번갈아 식당을 고르는 등 함께하는 의식과 역할, 목표를 새로 만들어갔다. 로저는 화요일 저녁을 좋아하는 방송을 보는 시간으로, 리사는 그 시간에 자기 사업을 챙기는 시간으로 삼았고, 함께 교회 봉사활동도 시작했다.

둘만의 노후를 꿈꾸던 리사와 로저의 바람은 만족스럽지 못한 결혼생활 속에서 사라질 뻔했지만, 관계를 되살리는 데 공을 들인 끝에 다시 희망을 갖게 됐다. 두 사람은 아이를 낳기 전 즐기던 일들을 다시 하고 있고, 새로운 계획도 세우는 중이다. 집을 줄여 이사할 준비를 하고 있고, 리사의 뿌리를 찾아 유럽으로 떠날 여행 자금도 모으고 있다. 빈 둥지는 외로움을 부를 수 있지만, 동시에 부부가 서로에 대한 애정과 친밀감을 새로 다질 기회이기도 하다. 한 시절이 끝났다고 관계가 끝나는 것은 아니다 — 오히려 다음 장이 이제 막 시작된 것이다.

원본: The Gottman Institut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