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음이 힘들 때, 그냥 써 내려가는 것만으로도 도움이 된다면
암 진단, 사고, 실직처럼 갑작스러운 인생의 사건은 마음의 중심을 흔들어놓는다. 이럴 때 자신의 생각과 감정을 글로 풀어내는 '표현적 글쓰기'가 감정을 추스르는 데 도움이 될 수 있다고 하버드 의대 공개 건강정보(Harvard Health Publishing)는 소개한다. 다만 만병통치약은 아니다. 이미 심한 우울증이나 외상후스트레스장애 같은 만성적이고 심각한 정신 건강 문제를 겪고 있는 사람에게는 효과가 떨어지고, 그렇지 않은 사람에게 더 잘 맞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이 분야 연구를 주도해온 텍사스대 오스틴캠퍼스 심리학과 제임스 페니베이커 교수는 초기 연구에서 건강한 대학생 46명을 두 집단으로 나눠, 한쪽에는 개인적으로 힘들었던 일을, 다른 쪽에는 사소한 주제를 나흘 연속 하루 15분씩 쓰게 했다. 그 결과 힘들었던 경험을 쓴 학생들이 이후 6개월 동안 학교 보건소를 덜 찾고 진통제도 덜 사용한 것으로 나타났다.
이후 연구 대부분은 수면무호흡증, 천식, 편두통, 류마티스 관절염, HIV, 암 등 신체 질환을 가진 사람들을 대상으로 이뤄졌다. 혈압이나 심박수 같은 신체 지표를 측정한 결과들을 보면, 표현적 글쓰기는 처음엔 오히려 마음을 어지럽히지만 시간이 지나며 긴장을 푸는 데 도움을 주는 것으로 나타났다.
최근에는 스트레스와 불안 완화 효과에 대한 연구도 이어지고 있다. 한 연구에서는 이 기법이 성소수자 남성의 낙인 관련 스트레스를 줄였고, 다른 연구에서는 만성적으로 지친 고령자 돌봄자에게 도움이 됐다. 시카고대 연구에서는 시험을 앞두고 불안한 마음을 짧게 글로 써본 학생들이 그러지 않은 학생들보다 더 좋은 성적을 받기도 했다.
방법은 간단하다. 정해진 시간 동안 특히 힘들었거나 스트레스가 됐던 경험에 대해, 맞춤법이나 문장을 신경 쓰지 않고 억누르지 않은 채 솔직하게 써 내려가면 된다. 쓴 내용은 누구에게도 보여줄 필요가 없다는 점도 중요하다. 이 과정에서 지금의 사건이 과거의 다른 힘들었던 기억을 함께 떠올리게 하는 경우도 있다고 한다.
왜 도움이 되는지에 대해서는 여러 설명이 나온다. 페니베이커 교수를 비롯한 초기 연구자들은 억눌러온 감정을 표현하는 것 자체가 핵심이라 여겼지만, 지금은 그보다 복합적인 기제가 작용한다고 본다. 경험을 다시 떠올리고 표현하는 과정이 생각을 정리하고 그 경험에 의미를 부여하도록 돕는다는 설명, 감정을 조절하는 능력을 키워준다는 설명, 이야기를 구성하는 과정 자체가 반추의 악순환에서 벗어나게 해준다는 설명이 대표적이다. 또한 힘든 일을 글로 먼저 정리해두면 이후 다른 사람에게 털어놓기가 한결 쉬워져, 결국 주변의 지지를 얻는 데도 도움이 된다고 한다.
타이밍도 중요하다. 사건 직후에 곧바로 글을 쓰면 아직 마주할 준비가 되지 않아 오히려 기분이 나빠질 수 있다는 연구 결과도 있다. 그래서 페니베이커 교수는 사건 후 최소 한두 달은 기다린 뒤 시도할 것을 권한다. 이런 유의점을 감안하더라도, 표현적 글쓰기는 활기차게 걷는 것만큼이나 손쉽고 비용이 들지 않는 방법인 만큼 한번 시도해볼 만하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