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주를 사랑하는 마음은 알지만 — 자녀 부부와 건강하게 거리 두는 법

손주를 사랑하는 마음은 알지만 — 자녀 부부와 건강하게 거리 두는 법

손주가 태어나면 도와주고 싶은 마음이 앞선다. 그런데 정작 자녀 부부는 그 도움이 부담스럽다고 느낄 때가 있다. 미국 가트맨연구소(The Gottman Institute)는 조부모의 선의가 오히려 자녀 세대에게 스트레스가 되는 상황과, 관계를 지키면서도 건강하게 선을 긋는 방법을 소개한다.

자녀 부부 입장에서 흔히 부담을 느끼는 상황은 다양하다. 육아에 대해 평가하는 듯한 말을 듣거나, 묻지도 않았는데 조언을 받거나, 손주를 대신 훈육하려 하거나, 정해둔 육아 방식과 다르게 아이를 대할 때다. 미리 연락 없이 불쑥 집에 찾아오는 것, 부모가 원하지 않는 음식을 아이에게 먹이는 것, 선물을 지나치게 많이 사주는 것도 자녀 부부를 지치게 하는 흔한 이유로 꼽힌다. 이런 상황이 반복되면 관계에 서운함이 쌓이고, 심하면 관계 자체가 흔들릴 수 있다.

경계를 긋는 상대가 다름 아닌 나를 키워준 부모(혹은 배우자의 부모)라는 점에서 이 과정은 유독 어렵게 느껴질 수 있다. 하지만 경계 없이 지나가면 서운함과 분노가 쌓이고, 그것이 결국 관계 자체를 해치거나 끝낼 수도 있다는 점에서 경계 설정은 건강한 관계를 위한 필수 과정이라고 가트맨연구소는 말한다.

가트맨연구소는 자녀 부부가 선을 긋기 전에, 먼저 스스로 무엇이 불편한지부터 구체적으로 파악해야 한다고 조언한다. 다른 사람의 말이나 행동에 유독 부정적으로 반응하게 된다면, 그 반응은 대개 경계가 침해됐다는 신호다. 조부모가 육아 방식에 대해 이야기하거나, 예고 없이 방문하거나, 정해진 낮잠 시간이나 식단을 지키지 않는 것처럼, 특정 행동에 유독 마음이 상한다면 그것이 곧 지켜야 할 경계다. 무엇이 불편한지 스스로도 명확하지 않다면, 왜 그런 행동을 하는지 자녀 부부에게 직접 물어보며 함께 실마리를 찾아가는 것도 방법이다. 이렇게 경계를 파악한 다음에는 자녀 없이 조용히 따로 시간을 내어 대화를 나누는 것이 좋은데, 아이의 나이나 부모가 어떻게 반응할지에 따라 아이가 듣지 않는 자리에서 이야기하는 편이 나을 때가 많기 때문이다.

경계를 전달할 때는 세 단계를 거치면 도움이 된다.

첫째, 상대의 행동 뒤에 숨은 마음을 먼저 헤아려준다. 예를 들어 낮잠 시간을 지키지 않는 것이 손주와 더 오래 놀고 싶은 마음에서 비롯됐을 수 있다는 것을 이해하고, 그 마음 자체는 인정해준다.

둘째, 감정과 필요를 부드럽지만 분명하게 전한다. 가트맨연구소는 이를 "다정한 화두 꺼내기"라 부르며, "나는 ~한 기분이 든다, ~한 상황에서, 그래서 ~가 필요하다"는 화법을 권한다. 예컨대 "낮잠을 안 재우고 오시면 저녁에 아이가 너무 지쳐서 제가 힘들어요, 정해둔 시간에 맞춰주시면 좋겠어요"처럼 말할 수 있다. 부모님이 자녀를 키운 방식은 그 시절 나름의 선택이었음을 인정하되, 지금은 내가 부모로서 방식을 정할 차례라는 점을 분명히 한다. 같은 이야기를 반복해도 나아지지 않는다면, "이 방식이 계속 지켜지지 않으면 다른 돌봄 방법을 찾아볼 수밖에 없어요"처럼 결과까지 함께 전하는 것도 필요하다.

셋째, 상대의 감정과 경계도 함께 들어준다. 조부모 역할이 즐거운 만큼, 그들 나름의 바람이나 선도 있을 수 있다. 내가 존중받고 싶은 만큼 상대의 이야기를 들을 자리를 마련하고, 그 경계도 똑같이 존중해주는 태도가 관계를 오래 지속시킨다.

경계를 세우는 일은 쉽지 않지만, 건강한 관계를 위해 필요한 과정이다. 처음부터 완벽하게 해내지 못해도 괜찮다 — 부드럽게 전하지 못하고 감정이 앞서 반응했다 해도, 다음에 다시 시도하면 된다. 스스로 어려움을 느끼거나 자녀 부부가 경계를 지켜주지 않아 힘들다면, 전문가의 도움을 구하는 것도 방법이다.

원본: The Gottman Institute